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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 우리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Sorry, We Missed you.)

2020-03-30 03:01:58

켄 로치의 영화다. 그의 영화는 훌륭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감동과 아픔을 잊지 않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왜냐하면 속상하기 때문이다. 먼 나라 선진국 영국민의 이야기인데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 아프고 속상하고 화도난다.

아마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멀리하며 재밌다고 입소문도 나지 않는가보다.

영화의 우울한 분위기와 사회성을 떠나서 솔직히 재미없는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 속에 잊혀지고 묻혀져가는 노동자의 삶과 용기를 그렸다면

이 영화는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테크놀로지 속에 허우적대는 가난한 노동자 가족의 몸부림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부모의 휴대폰은 더 이상 따뜻한 소통의 기기가 아니며, 심지어 가족들 간에도,

누군가가 나를 호출하고 그 호출을 거절하는 부름과 응답의 도구일 뿐이며

사춘기 아들의 휴대폰은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되었으며, 심지어 학교 과제까지.

딸의 휴대폰은 텅 빈 집을 혼자 지킬 때 엄마의 당부를 전해 받는 도구일 뿐이다.

아빠의 스캐너는 또한 어떤가. 스캐너에 종속된 아빠의 일은 기계의 부품과도 같을 뿐.

그렇게 보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이래 백년이 넘도록 우리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종속화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엄마는 하루에 6건 이상 방문요양을 뛰어야 하지만 환자들을 내 엄마처럼 돌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고.

아들은 그림과 그래피티를 통해 자신의 상상을 펼치며

딸은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그만의 천진함으로 아빠의 열쇠를 감추며

아빠는 온 몸이 터진 상태에서도 밴을 몰고 질주하며 일터로 향한다.

그들에게 오늘 보다 더 나은 삶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누구도.

하지만 그들이 품은 그들이 놓지 않는 인간애와 서정, 가족 사랑이야말로

우리들을 한낱 기계 부품으로 떨어지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결국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울림이다.

그러기에 캔 로치의 영화는 사회 고발에 그치지 않고 드라마가 되는 거이다.


이 영화가 지금 우리에게 더 와 닿는 이유 중의 하나는

쿠팡맨 이나 요양보호사 같은 직업군이 실제로 우리나라 서민 일자리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어서 더 그렇다.

그래서 원제 'Sorry, We Missed You'가 우리말 제목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고객님, 부재중이십니다.'

아빠가 일하던 택배회사의 택배 증명서의 문귀를

가족의 처지에 빗댄 이중적 의미라 더 깊이 다가온다.

리키의 가족은, 우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외로운데 누가 찾고 있기나 한 것일까?

나에게 물건이라도 부쳐주지 않으렴?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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