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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따뜻해서 비현실적인 <블라인드 사이드>

2020-03-30 03:01:52

blind side

1. 럭비 경기에서 터치라인(touch line)에 가장 가까운 좁은 지역으로 스크럼(scrum), 라인아웃(line out), 럭(ruck), 몰(maul) 등의 상황에서 백스(backs)가 라인을 맞춰 서 있는 경기장의 반대편

2. (특히 다가오는 위험의) 잘 안 보이는 쪽

3. 약점

 

 

 

너무나 따뜻해서 비현실적인

 

<블라인드 사이드>는 정말 감동적인 드라마다. 스포츠의 귀재로서 많은 가능성을 가졌지만 부모 없이 슬럼가에서 외롭게 살아온 가난한 청년에게, 어느날 갑자기 든든한 후원자가 생겨 풋볼 스타가 된 이야기다. 하지만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오헤어가 풋볼스타가 되기까지의 "필연성"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은 우연적으로 이뤄졌다.

 

우연히, 오헤어가 농구하는 모습을 본 풋볼 감독이 조건이 안되는 흑인 아이를 백인들의 사립학교에 입학시킨다.

우연히,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다니며 잘 곳도 없는 가난한 흑인청년을 어느 부유한 백인 아줌마가 거두어 먹인다.

우연히, 오헤어가 들어간 그 집안은 스포츠 집안이었고 '가족들'은 그가 풋볼을 할 것을 권유한다.

우연히, 오헤어는 자신이 풋볼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우연이 아닌 것은, 오헤어가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새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밖에 없는 불우한 청년을 정력적으로 돕는 아줌마(샌드라 블록)에게 관객들은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정말 너무 따뜻하다. 세상에, 저런 아줌마만 있으면 새 세상이 열릴 것 같고, 세상은 정말 따뜻한 곳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이건 정말 함정이 아닐까?

 

영화의 두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정말 평균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추정된다)은 그녀를 의심한다.

첫번째는 아줌마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흑인 아이를 가족처럼 데리고 사는 것이) "백인으로서의 죄책감(white guilt) 때문이냐?" 이에 샌드라 블록 아줌마는 "Shame on you"라고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하지만 진정 휴먼 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면, 감독은 이 부분을 이렇게 처리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몰라보는 그 친구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내보여야 했다. 그것이 이 드라마를 위대한 인간성의 승리로 보여지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샌드라 블록 아줌마의 의도는 친구의 의심대로 백인으로서의 죄책감에 따른 행동이 되어버렸다.

두번째는 대학 풋볼선수 영입에 의심을 품은 조사관이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과외선생도 미시시피대 출신이다. 가난한 흑인 청년을 후원해서 자신의 출신대학으로 영입시켜 스포츠팀을 강화시키는 일이 아마도 비일비재 한가보다. 그래서 오헤어가 미시시피 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 같은 일이 아닌지에 대해 조사관은 의심한다. 며칠을 방황하더니 오헤어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궁상맞다. 아줌마네가 진정한 '가족'이라고 느낀 곳이 하필이면 슬럼가라니. 또다시 의심이 진짜가 된다. 조사관의 의심이 맞았어.

 

의심은 주인공을 시험하지 않고, 주인공들은 극복하지 않는다. 그저 의심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영화 전반을 흐르는 이 따뜻함.. 저런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이 정말 따뜻해질 것만 같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따뜻하기만 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럼가의 모든 흑인들에게 이 가족 같은 따뜻함이 베풀어진다면 슬럼가는 없어질 것이다

 

 

blind side : 잘 안보이는 쪽 vs 약점

 

어쩌면 감독은 이들 가족의 실제 이야기에서 현실의 갈등을 풀만한 단초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 즉 샌드라 블록 아줌마가 결말부에 독백하면서 말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많은 스포츠 재목들이 가능성만을 가진 채로 어린 시절에 마약, 범죄에 희생되고 있다는 부분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 어두운 부분을 사회가 인식해야만 하며, 이 아줌마 같이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미국 사회에 조금이라도 가지게끔 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감독은 이 가족 이야기에서 미국 사회의 약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이 백인가족은 가난한 슬럼가 출신의 흑인 청년을 가족으로 맞이했지만, 그들이 슬럼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부유한 백인들은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회구조가 그들을 부유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이 가능성 있는 흑인 아이를 스포츠스타로 만든 것은 그들의 이러한 약점 때문이다~는 얘기가 하고 싶지는 않았을런지. 

 

어느 쪽이더라도 이 영화가 훌륭한 휴먼 드라마임은 틀림이 없다. 현대인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의 행동에 감동한다. 나아가 나를 후원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편으로 깨닫는다. 이런 일은 드넒은 사막에서 모래 한 줌 만큼의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다. 이 훌륭한 휴먼드라마가 한편으로는 따뜻함을, 한편으로는 현실의 냉정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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