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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당갈 (2016) - 인도 역사상 최고 흥행의 스포츠 드라마

2020-03-27 01:08:04

당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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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면 카스트 제도로 상징되는 신분차별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그 못지 않게 심하게 고통받는 계층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들이지요.

인도는 전통적으로 부계 사회이며 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은 결혼할 때 지참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여성이

가족의 일원이 되면 군입이 늘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이죠.

그런 인도에도 뭔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무섭게

발전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가는 것이죠.

(중국 전국시대 명재상이었던 관중의 혜안이 새삼 놀랍네요. 2800년전에 이미

"의식이 풍족해야 비로소 예의를 안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인도의 가장 큰

산업인 영화계는 이런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반응을 보였던 프리앙카 초프라의 메리 콤

스포츠 영화에도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2014년에는 프리앙카 초프라

주연으로 5차례 세계 선수권을 제패한 메리 콤의 실화를 극화한 영화 "메리 콤"이

제작되어 괜찮은 흥행을 거두었었죠. 그리고 2016년에 발리우드 삼대 칸의 한 명인

아미르 칸의 신작 "당갈"은 역대 인도 영화의 흥행 기록을 모두 깨며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아미르 칸과 기타 자매를 연기한 여배우들

당갈은 인도의 여자 레슬링을 개척한 기타와 바비타 자매의 실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당갈의 영리한 점은 영화의 중심 인물로 두 자매 못지 않은 비중을 아버지인

마하비르 싱 포갓에게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하게 자매를 주인공으로 인간 드라마를

찍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란 존재가 끼어들면서 영화는 깊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상의 기타와 실제 기타

마하비르 싱 포갓은 구체제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차 있고 부계 사회에서의 가정 내 권위의 상징이지요. 가정에서는 아무도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고 그 결과 두 자매는 원치 않았던 레슬러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체벌이라는 폭력적 수단은 눈을 찌푸리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기타와 바비타는 그저 예쁘게 꾸미고 싶고 중매로

일찍 결혼하는 친구를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들이 억압받는 인도 표준

여성의 길을 그대로 걷는다는 의미지요. 마하비르는 아내에게 남자들이 딸을 고르는게

아니라 딸들이 남자를 고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자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를 구축해야 하고 레슬링은 그 수단인 것입니다.


늠름하게 변한 기타와 바비타

마하비르는 딸들에게 레슬링이 아닌 인도 전통 씨름인 크슈테를 먼저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죠. 모래밭에서 펼쳐지는 전통 씨름은 거의 벌거벗은 남성들의 스포츠인데

마하비르는 여성 선수가 없자 성대결을 불사하며 딸들의 출전을 강행시킵니다.

당갈의 시나리오는 페미니즘과 가족 드라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데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이라고 보여집니다.

누구도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조력자가 필요하죠. 그 조력자가

피를 나눈 존재라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마하비르가 대도시로 가서 수모를 당하면서도

딸들을 돕는 모습이 감동적인 건 부성애가 관객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가치관 모두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딸의 승리에 기뻐하는 마하비르 싱 포갓

당갈은 중국 시장에서만 2억 달러에 가까운 괴물같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물론 세 얼간이나 P.K의 성공이 중국내에서 아미르 칸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도 한 요인이겠지만 당갈이 피력하는 주제의식이

중국 사회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아미르 칸을 빠놓고 당갈을 얘기할 순 없을 겁니다. 사실 영화의 원안은 디즈니에서

나왔습니다. 2012년 마하비르 싱 포갓과 기타, 바비타 자매의 뉴스 기사를 본 디즈니의

인도 간부는 이 아이디어를 검토했고 시나리오 초본을 아미르 칸에게 보냈죠. 아미르 칸은

만족감을 표시했고 대신 영화로 만드는 건 본인이 60대가 되는 10년 후로 미루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P.K의 차기작으로 결정했죠.


혹독한 트레이닝을 감행한 아미르 칸

극중에서 아미르 칸은 마하비르의 20대부터 60대까지 긴 시간대를 연기합니다. 이를 위해

노년의 불어난 몸매를 위해 30kg을 찌웠다가 다시 20대의 레슬러 몸매를 만들기 위해

처절한 트레이닝을 감행했죠. 이런 체중조절은 로버트 드니로가 성난 황소에서 보여준

모습에 필적하는 수준입니다. (유튜브에 가면 트레이닝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빠, 저희한테 왜 이래요

당갈의 성공에는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발리우드답지 않게 맛살라신은 하나도 없지만

타이틀 곡의 웅장한 박력은 투지 넘치는 스포츠 영화의 테마로 손색이 없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또한 기타 자매가 훈련하는 장면에 흐르는 "Haanikaarak Bapu"는 날벼락이 떨어진 자매의

심경을 그대로 들어내는 가사와 경쾌한 진행으로 맛살라신 못지 않은 흥겨움을 전해주죠.

똑같이 레슬링을 소재로 한 술탄에 출연했던 살만 칸은 당갈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나오면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이 때까지 아미르 칸의 최고작은 라가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당갈이 최고작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가안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지만 살만 칸의 말대로 당갈 역시 존중받을만한 수작입니다.

ps. 중국과 대만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는 것을 보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먹힐 것 같은데

      과연 수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ps2. 영화의 레슬링 트레이닝을 담당한 비슈노이 코치는 인도에서 여성이 레슬링을 꺼리는데

       달라붙은 레슬링 유니폼의 영향도 있다면서 영화가 그런 분위기를 전환해줬으면 한다는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ps3. 영화 술탄에서 여주인공 아르파의 출신지가 하리야나인데 기타와 바비타의 출신지가

       바로 여기죠. 이들 자매 덕에 하리야나가 여성 레슬링의 성지가 되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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