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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이 정말로 없어지는 그 날까지

2020-03-27 01:14:32


그린 북 Green Book

피터 패럴리, 2018


 기쁜 소식. 마허샬라 알리가 <그린 북>의 돈 셜리 박사 역으로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에서 눈여겨보다가 <문라이트>에서 확 반한 배우. 한동안 그의 입모양을 따라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에 그의 수상 소식을 듣게 된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너무 그를 위주로 영화를 볼 것 같았기 때문. 하지만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영화는 한동안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토니 발레롱가 혼자서 진행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벌써 마허샬라 알리는 잊어버렸다. (비고 모텐슨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이라는 것 역시 알고 봤지만 잊어버렸다.) 토니 발레롱가라는 인물은 단순히 표현하자면 그냥 동네 양아치. 나이트클럽 관리인으로 일하던 그가 직업을 잃게 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렇게 그는 천재적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로드매니저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는 1962년.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하던 시대.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다. 여기서 ‘그린 북’이 등장한다. 그린 북이란 유색인종들만을 위한 북으로, 일종의 여행 안내서다. 그들은 백인들처럼 자유롭게 미국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유색인종이 이용 가능한 호텔, 식당 등을 찾아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흑인이 아닌, 흑인 피아니스트의 경호를 맡은 백인에게 주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특별한 지점이다. 흑인이지만 경제적/명예적으로는 상위 클래스에 있는 인물과, 백인이지만 하층민에 있던 인물의 만남. 백인은 유색인종에 대해 편견적인 시선을 보이고, 흑인은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감독이다. 유명함을 넘어 코미디 영화, 아니 코미디 그 자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덤앤더머> 시리즈를 만든 장본인. 그러나 감독은 대놓고 코미디 영화처럼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근데도 재밌다. 원래 웃기려하지 않으면서 웃기는 게 더 웃기다. 코미디(웃음)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 짜여있어야 성립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되는 영화. 둘은 투어 내내 티격태격하며 점점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데, 인상적인 것은 그 과정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수위가 아슬아슬하게 완벽히 조절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 영화 같기도, 아니 어쩌면 정말로 현실적인 것일 수도. 그 수위가 마침내 넘어서는 순간, 마허샬라 알리가 외친다. “흑인들은 내가 부유하기 때문에 흑인이 아니라고 하고, 백인들은 내 피부색 때문에 내가 백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난 도대체 누구인 거야!” 완벽한 타이밍에 터지는 완벽한 대사. 너무 잘 짜여져있지만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쉬웠음에도, 이런 영화 하나 쯤은 있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 내가 생각하는 ‘놀이기구로서의 영화’로서는 최고의 영화였다.



백인이 마음을 여는 순간

 백인 토니 발레롱가가 흑인 돈 셜리에게 마음을 여는 첫 순간은, 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본 다음이었다. 그가 피아니스트라는 말은 들었지만, 얼마나 뛰어난 줄은 몰랐던 토니는 셜리 박사의 엄청난 피아노 실력을 보고 난 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천재 같다”라고 적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군가에 대한 칭찬을 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당시 흑인은 뭔가에 뛰어나지 않으면 아무 힘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돈 셜리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의 말에 권위가 실리게 된다. 그래서 그 다음 셜리 박사가 토니의 아내에게 쓰는 편지를 도와주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피아노를 못쳤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그린 북>은 남아 있다.

 토니 발레롱가는 영화에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냥 사회적으로 유색인종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던 시대니까, 그 역시 남들을 따라서 ‘편견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택시운전사>가 많이 떠올랐다. 그저 잘 몰랐던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 뭔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 둘 다 용기 있는 손님을 어딘가에 데려다주는 과정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린 북>에서는 <택시운전사>처럼 운전사가 ‘유턴’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웠고, 그 부분이 <그린 북>을 판타지로 느껴지게 했다. 특히 마지막 토니 발레롱가의 집에서, 그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셜리 박사를 기쁘게 맞이하는 모습이 가장 못미더웠다. 한 편의 영화로서는 참 이상적인 결말이었으나, 과연 이것이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제 ‘그린 북’이라는 것은 세상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 차별을 먹고 자란 트럼프 시대다. 그러니까 아직 사람들 마음 속에 ‘그린 북’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 시대에 나온 <그린 북>이라는 영화는, 그것보단 한 발짝 더 나아갔어야하지 않나 싶다. 흑인 배우에게 남우조연상을 준 정도로는,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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