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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를 보고

2020-03-31 05:10:34

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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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느낄 불편함, 억울함, 설움.


그러나, 그럼에도 모두가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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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사회를 가면서 난 내가 울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정말 울었다. 억울해서, 죄송해서, 그리고 분해서. 중간에 무릎도 떨렸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들을 절대 잊지 말자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여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이 감정을 잊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감독님의 의도였다면, 내게는 정말로 100퍼센트 닿아온 것 같다.


2. 영화는 비교적 담담하게 흘러간다. 피가 나오지도 않고, 잔인한 장면도 없다. 대신 그들의 사투는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이어진다. 그게 날 사무치게 했다. 네가 미쳤구나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꾸준히 할머님들을 돕는 정숙의 모습은 갈수록 좁아지는 집, 늘 일만 좇느라 챙기지 못했던 딸과의 사이 회복을 통해 느릿하게 그려진다. 오랜 싸움을 담아내야 하는 만큼 어쩌면 맥이 끊길 수도 있게 불쑥불쑥 흘러가는 영화 속 시간들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3. 마지막에 나온 문구를 잊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그 자그마한 인정이라도 받았던 할머님들이 모두 가시고 우리가 그 사실마저 잊어버리는 게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이 영화를 본 우리가 절대 그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함을 깨닫는 건 그들의 목적이 이뤄질 수 없다는 증거가 되어주지 않을까.


4. 꼭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승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우리는 기록하는 펜대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5. '배정길' 역을 연기하셨던 김해숙 배우님은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우울증을 진단받으셨고, 치료를 받으셨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하신 배우님은 또 울음을 터뜨리셨다고 하는데, 영화를 본 입장으로서 그녀가 감정에 이입하며 겪었을 감정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말 괴로우셨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할 수 있어서, 어려운 역할을 맡아 몰입에 도움을 주신 배우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6. 앞서 김해숙 배우님만 언급했지만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님들의 연기가 뛰어나며,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을 가지고 계셨다. 유일하게 비중 있는 남자 캐릭터로 그려지는 김준한 배우님의 연기도 아주 좋았다. 너무 초점을 많이 가져가지 않되 제 역할을 하는 그의 역할이 영화와 어색함 없이 어우려졌다고 생각한다.


7. 이번 여름에는 여성들이 영화의 주연이자 조연인 영화들이 꽤 있다. 난 그 사실이 아주 반가운 사람이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 모든 영화들을 볼 예정이다. 이 영화가 그 시작이었다. HISTORY에서 HERSTORY로 변화한 게 아니라, 어쩌면 HISTORY에서 지워진 HERSTORY가 있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게 된 지금, 이 영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좋은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한다. 이 후기를 작성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후기를 찾아본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를 봤거나, 아니면 볼 예정이거나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망설이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작은 후기가 영화관으로의 발걸음에 조금의 확신을 더해줄 수 있길 바라본다.


8. 잊지 말자.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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