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craft

<신데렐라 맨>결론은 '러셀크로는 멋져'

2020-03-31 04:44:30


'신데렐라 맨'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무척 화려한 제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국 실존했던 복서 제임스 브레독에 대해 실존했던 신문기자가 실존했던 신문지면을

통해 붙여준 실존했던 별명에서 따온 제목이기는 했지만, 그런 세세한 사항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이 영화를 보기전의-나로서는 영화에 대한

대중적이라고 할수있는 몇가지 소개문구들과 감동적인 종류의 예고편들을 통해

마음속에 품게 되었던 '비참함'을 다룬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기대에

의거하여, 정말로 '신데렐라 맨'이라는 제목은 과분할 정도로 화려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화속에 진정한 신데렐라 맨이었던 러셀크로는 이 화려한 제목의 광채를

묻히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이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몇가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서라도 모두의 뇌리에 남도록

소개하고픈 욕망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는 최대한 그 욕망을 억제하고, 간단히

'나보다 시를 잘 쓰는 친구' 정도로만 소개하도록 하겠다.)와 머리를 맞대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아도, 나오는 결론은 단 2가지 '시간 가는줄 모르게 재미었었다'(144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와 '러셀 크로는 너무 멋지다' 뿐이었으니, 이 영화에서

론 하워드가 설정해놓은 과학적이고도 감성적인 장치들에 의해 러셀 크로가 얼마나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했을지는 대충 상상이 가지 않는가?

 

이쯤에서(너무 늦기전에) 내가 볼만한 영화가 넘쳐난다는 추석연휴에, 하필이면 11관까지

있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10관이라는 초라한-전체 좌석이 100석이 채 되지 않는-상영관에서

상영하고 있던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조금은 어긋나버린 기대심리에 대해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러셀 크로'나 '론 하워드'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나는 러셀 크로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LA컨피덴셜에서 버드 화이트 형사로 처음 그 이름을

알렸을 무렵부터, 로마의 위대한 장군 막시무스, 뒤틀린 삶을 산 천재 존 내쉬에 이르기까지

그는 '연기의 달인'이라고 부를만한 위대한 배우의 혼이 실린 연기(그것을 처음

느낀 것은 유주얼 서스펙트에 나온 케빈 스페이시의 절름발이 연기였다)와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스러운 연기를 언제나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존 내쉬가 노벨상 시상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지도 벌써 4년이나 지났고, 최근 사생활의 문제로 조금은 이미지가 나빠진 그에게

내가 과거에 품었던 도가 지나친 흠모의 마음이 말그대로 '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흡사

얼마전 개봉한 '랜드 오브 데드'를 무슨 경건한 종교의식을 치루는 듯한 마음으로

목욕재개하고(사실이다ㅡㅡ;;) 본 것이나, 린제이 로한이 출연한 영화라면

내용,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목숨걸고 찾아서 보는 것과 같이 '오바'를 하며 봐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한것은 러셀 크로의 살아있는 연기도, 론 하워드의 감동적인

연출도 아닌, 문득 머리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동반하며 자리잡은 '비참함'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왜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만은, 아니 요즘 시대에는

어쩐지 '비참함'이 그리워진다. 샐린저의 단편소설에 나온 '에스메'라는 이름의

영리한 소녀는 스스로 '비참함을 사랑한다'고 까지 말하는데, 나는 물론 그 이국적인

개념에 대해 '사랑한다'는 고귀한 표현을 해주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왠지

론 하워드, 러셀 크로, 신데렐라 맨 이라는 세개의 코드가 만나 이런저런 감성적인

함수장치를 지나쳐 결론으로 떡하니 내놓은 것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냥

받아들여 버린것처럼, 그저 막연히 '비참함'이란것에 (솔직히 말하자면)어긋난

기대를 품게 되버린 것이다. 어쩌면 같이 이 영화를 본 친구를 비롯해서 극장을

가득 매운 관객들이 피떡이 되는 러셀 크로의 얼굴을 보며 서러운 흐느낌을

흘리는 것을 듣고, 또 보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기대한 일은 무엇하나 실현되지 않았다(심지어 객석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비참함을 느끼며 흐느끼기는 커녕,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러셀 크로는 화려했고, 멋있었으니까. 애초에 영화의 도입부에 나온

'제임스 브래독의 이야기는 진정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이다'라는 문구를 보고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르네 젤위거가 자식들에게 시합 중계를

못듣도록 할 필요도, 영화를 함게 본 친구가 내내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을

필요도 없었을테니...

 

어찌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권투시합을 보면서, '내일의 조'처럼

시합이 끝난후 선수가 의자에 앉아 잠들듯 죽어버리는 비극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유명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에서도

한번도 그런 경우를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것은 영화니까, '록키'에서

아폴로가 무식한 러시아 선수의 주먹에 비명횡사한것처럼 그렇게 치명적인

비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수도 있었지만,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이면서 실화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이야기가 '비참함'을 내던져버리고서라도 만끽하고픈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시합중 선수를 두명이나 죽게 만들었다는

챔피언과 15라운드에 달하는 대혈투을 치루는 동안, 대공황의 혼란속에 굶주리고

쓰러져가던 미국의 빈민들(거의 대부분의 시민들)과, 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다. 말그대로 '손에 땀을 쥔채' 영화에, 시합에 집중을 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재대로 감정이입! 브래독! 브래독! 나는 영화를 보며 이렇게까지 극장안의

관객들의 집중도가 올라가있는 모습을 본-느낀-적이 없다. 이것은 결코 내 착각이

아니라고 감히 확신한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러셀 크로는 너무 멋있었고, 영화는('시합은'이라고 바꿔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감동적이고, 손에 땀을 쥐게할 정도로, 또는 영화를

보는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정도로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이 포스트의 마무리하기 이전에, 과거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 했었던 론 하워드 감독에

대한 찬사와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보라면, 우선, 그가 매우 영악한 수단으로

관객들을(적어도 나를) 속이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같다.

그는 브래독의 수차례 부러졌던 오른손과, 금이간 늑골과, 나이와, 실제 브래독과는

관련이 없겠지만 그를 연기한 러셀 크로의 (다른 우락부락한 배우들과 비교해보면)외소해

보이는 체격과, 시합중 2명이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챔피언 맥스 베어의 무시무시한

눈빛과 같은 장치들을 이용해 관객들이 '결론은 비참함'이라는 어긋난 함수장치의 장난스러운

속임수에 스스로 빠져들게끔 교묘한 술책을 부렸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 솔직한 심경으로)거장 감독들만이 가질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재주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삭제 수정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