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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맨>진정한 챔피언, 그리고 아버지

2020-03-31 04:44:42

 

 "복싱 역사에서 제임스 J. 브래독(James J. Braddock)의 삶은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결정체이다." - 데이몬 러니온(Damon Runyon) 1936

 

아무리 최고의 복싱선수라 해도 15라운드 내내 정력적으로 움직일 순 없습니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면 3,4십여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마치 2시간이상 마라톤을 달리는 것 만큼이나 긴 시간이며 자그마한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며,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처하기도 합니다. 열정적으로 스탭을 밟으며 쉼없이 이기기위해, 혹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주먹을 내밀어야 하며,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의 라운드가 존재하듯이 우리네 인생도 가끔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또한 영광의 순간을 위해 불굴의 의지 또한 필요합니다. 물론 승자가 되는 것 만큼 행복한 건 없겠지만,  그 결과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패배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복싱이란 것이 그러하며,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훔치는 것은 안돼, 약속해. 훔치지 않겠다고.

그럼 나도 널 다른 집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대공황. 한때 잘 나갔던 복서 제임스 브래독에게도 대공황의 태풍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차츰 복서로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브래독에게 대공황이라는 악재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그의 삶과, 인생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몹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재앙인지, 도대체 언제쯤 이 비극이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의 삶입니다. 복싱을 통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던 브래독이지만 그는 이제는 한물간 퇴물 복서이며 자신과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들의 한끼 식사를 걱정해야할 극한의 처지입니다. 그래도 그에게 아내와 자식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이자, 그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인기복서였던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그의 삶은 점점 비참해져만 갑니다. 생활보조금을 받기 위해 오랜시간 줄을 서야하고, 그날의 일거리를 찾기위해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 선택되길 바래야하며, 아직까지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몸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전기세를 낼 수 없는 절박한 상황때문에 그토록 의지하던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하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을 때에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팔아버립니다. 하지만, 15라운드의 권투경기처럼 아무리 힘든 상대를 만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오기를 바라듯이, 정말 힘든 현실이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결국엔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있던 제임스 브래독. 그랬던 브래독에게 믿을 수 없는 기회가 다시 찾아옵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따뜻한 스프와 빵을 먹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말입니다. 망가져가는 그의 몸은 뒤로 한 채, 브래독은 그의 인생에 다시는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 기회를 위해서 글러브를 낍니다.

 

 

비록 오랜 경기감각의 부재로 몸은 예전같지 않지만 적어도 정신력만큼은 과거 잘나갔을 때보다 훨씬 무장이 되어있는 브래독. 한 경기로 끝날 것 같던 그의 재기무대는 점차 이변의 주인공이 되어가며 과거 이루지 못했던 세계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한발한발 다가가게 됩니다. 절대로 자신에게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은 비록,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도 승리를 향한 열정으로 승화가 되어 그의 몸을 추스려 세웁니다. 점점 강해지는 상대, 점점 그가 이기기에는 너무나도 벅차 보이는 적수들이지만, 이미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한 브래독에겐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으며, 더 이상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혜성같이 등장해 연일 승전보를 울리는 브래독의 투혼은 단순히 그와 그의 가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노동자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잠시나마 그들에게 행복의 순간을 부여해주는 영웅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브래독이 누구인가. 그들과 함께 극빈층을 위한 생활지원금을 받기위해 함께 줄을 섰던 인물이며, 하루 일당을 위해서 새벽부터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일했던 인물이며, 하루의 시름을 잊기 위해 한잔의 맥주를 함께 마시던 인물이 아니던가. 바로 그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인물이 바로 브래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브래독의 믿을 수 없는 재기는 그들에게도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했으며, 모두가 브래독의 경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 [신데렐라 맨]은 실존했던 복서 제임스 브래독의 이야기를 다룬 복싱영화입니다. 아니, 단순히 복싱영화라기 보다는 대공황의 혼란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진정한 영웅이자 챔피언이었으며, 한 가정의 듬직한 아버지였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짧지만 당사자들에겐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15라운드 권투경기 시합처럼, 지나고나면 금새 지나가버린것 같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기만 한 우리네 인생. 링에 오르는 그 순간엔 누구나 공평하듯이 우리네 인생 또한 누구나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어느정도 공평한 조건이 주어집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링 위에서 쏟아낼 것이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비열한 챔피언이 되기 보다 아름다운 패배자가 더욱 돋보이는 것도 바로 그의 모습속에 최선을 다한 진정한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위기가 있고, 거의 쓰러져가기 일보직전에 기적같이 반격의 기회가 오듯이, 수많은 굴곡과 아픔. 그리고 웃음과 애환이 버무려진 우리네 인생은 바로 15라운드 권투경기와도 같은 삶이라 하겠습니다.

 

승리만이 제임스 브래독을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 했으며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 했기에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절대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겐 믿음직한 가장으로서, 또한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심어준 영웅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해도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던 브래독. 비록 그의 약속이 한낱 오기로 치부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 아버지의 진심어린 눈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진한 사랑입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언제, 어느 순간에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힘들면 그냥 링위에 누워있으면 됩니다. 더 이상 맞지 않기 위해서, 까짓거 다시 기회가 오겠지하면서 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란 자신의 요청에 의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들지만 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나 싸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기회입니다. 제임스 브래독은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암담한 현실속에서도 아내와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냥 길을 걷다가 재수가 좋아서 생긴 기회가 아닌, 진정으로 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진정한 챔피언으로서, 한 가정의 영웅으로서 브래독의 화려한 15라운드의 삶은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다 하겠습니다. 한 남자의 굴곡많지만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감동적으로 그린 드라마 [신데렐라 맨] 입니다.

 

 

"당신은 뉴저지의 자존심이고 우리 아이들의 영웅이고

나에겐 최고의 챔피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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