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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Green Book, 2018)

2020-03-27 01:14:04

 



*스포일러 주의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주연의 《그린 북》을 일찍 보게 되었다. 시상식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린 북》의 수상 실적은 벌써부터 대단하다. 전미비평가위원회(NBR)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비고 모텐슨) 수상, 미국영화연구소(AFI) 선정 2018년 Top 10 영화,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관객상 수상 등등. 물론 내년 2월에 열릴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강력한 작품상/주연상/조연상/각본상 후보작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어떤 영화이길래 이럴까?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주제인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이고, 놀랍게도 빼어난 코미디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1962년 미국 뉴욕 북부의 브롱스에서 시작한다.


잠깐 브롱스 지역 이야기를 해야겠다. 갓무위키에 의하면 브롱스 지역은 원래 주로 유럽계 백인들이 모여 살던 중산층 동네였다고 한다. 1948년에 흑인들이 집을 살 수 없도록 했던 인종차별적 법이 폐지되는데, 이 시기에 부동산 업체들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혐오(니그로포비아)를 이용하여 집을 싸게 처분하는 짓거리를 벌였다고 한다(이걸 blockbusting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결국 브롱스 지역에서 중산층 백인들이 흑인을 ‘피해’ 교외로 떠나고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



오른쪽 위 지역이 브롱스



주인공 ‘떠버리’ 토니는 바로 이 브롱스 지역에 사는 이탈리아계 백인이다. 그는 부모님 및 형제들과 대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별명답게 토니는 허풍, 그러니까 말로 사람을 구워먹는 실력이 있고 주먹질도 잘한다. 그는 한 클럽에서 ‘고객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건물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바람에 몇 달 동안 일을 찾아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토니는 일자리를 하나 소개받는다. 어떤 ‘박사’의 공연 투어 일정 동안 운전사 겸 매니저로 일하는 것.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으리으리한 카네기홀이었다. 그렇게 토니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부유한 흑인인 돈 셜리 박사를 만난다. 이렇게 해서 ‘로드무비’가 펼쳐지고, 토니는 주급 125달러에 ‘돈 셜리 트리오’의 미국 남부 투어를 하는 8주 동안 셜리의 손발이 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토니가 셜리의 피고용인이 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토니는 수리를 위해 자기 집에 들어온 흑인 두 명이 아내에게 음료를 대접받는 모습을 보고는 그 컵을 휴지통에 버릴 정도로 인종차별이 내면화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흑인 밑에서 일하기로 결정한다? 이건 돈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본주의란 참 재미있다. 어떤 면에서는 돈이 가장 관용적이고, 포용적이고, 자유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돈은 그 어떤 급진주의도 포용할 수 있고, 가까이 하기도 싫은 사람과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요즘 신조어인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가 이 점과 통하는 면이 있으려나?


《그린 북》은 인종차별을 1차원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무식하고 우악스러운 차별도 나오긴 한다. 예를 들어 술집에서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영화가 보여주는 교묘하고 위선적인 차원의 차별들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묘하게 모순적인 느낌을 받는다.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을 시절 이야기잖아? 게다가 차별 정서가 더욱 심했던 남부가 배경이잖아? 그런데 흑인의 공연을 보러 온 저 젠틀한 백인들은 뭐고 관계자들은 뭐지?’


남부의 어느 대저택에서 공연을 할 때, 셜리는 집안의 화장실을 쓰고자 한다. 그런데 집주인은 저 바깥 화장실을 쓰면 된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공연의 ‘주인공’으로서 집안에서 공연도 했는데, 화장실은 못 쓴다고? 결국 셜리는 공연의 2부를 늦추면서까지 숙소의 화장실에 다녀온다. 나중에 공연장의 식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화장실이나 식당은 모두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다. 백인들이 셜리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기꺼이 찬사를 보내는 것 같지만, 결국 백인들에게 있어 그는 여전히 ‘격리된’, ‘분리된’ 종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정작 ‘일상’의 영역에서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위선이다. 백인이 흑인의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고 인종차별이 해결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각한다면, 겉으로는 짐짓 교양 있고 젠틀하게 행동하던 사람들이 속으로도 정말 그랬을까 하는 의심을 해볼 수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렇고 사회 분위기는 대놓고 차별(적 언행)을 할 수 없게 바뀌어 가는데, 그 집단에 대한 나의 태도와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 결국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오늘날에도 똑같이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내가 《그린 북》을 차별을 주제로 한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그린 북》은 그저 ‘뭉뚱그린 정체성’에 기반해 차별 이슈를 전개하지 않는다. 단순히 흑인 대 백인, 흑인은 차별받고 백인은 나빠요. 이런 수준에 그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주인공을 비교해보자. 토니는 백인인데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고 중하층에 속한다. 셜리는 흑인인데 천재 피아니스트이며 부유층이다. 인종적 측면에서는 토니가 기득권자, 셜리가 소수자에 속한다. 하지만 돈의 측면에서는 셜리가 강자이고 토니가 약자다. 게다가 토니의 인종적 측면(백인)도 단순하지는 않다. 미국인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이탈리아 출신이니 말이다(그는 경찰관에게 ‘[이탈리아계니까] 흑인 밑에서 일하지’라는 모욕을 듣고 격분한다).


물론 그렇다고 둘을 또이또이하게 다루진 않는다. 초점은 셜리가 당하고 참아내야 하는 차별에 맞춰져 있다. 더욱이 셜리는 어디 한 곳에 확실히 속하지 못한 인물이다. 흑인이지만 부유층이기에 그는 대다수가 빈곤층인 다른 흑인들과 어울려 살아본 적이 없다. 부유층이지만 흑인이기에 그는 백인들의 사회에 낄 수 없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정체성이 있는데, 이것까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심하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하지만 토니 역시 일면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는 인종차별이 내면화된 백인이지만 동시에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의 사람이고, 그가 클럽에서 주로 힘을 써서 ‘고객 관리’를 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 것도 그의 배경(이민자 중하층 집안)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토니가 처한 배경과 상황이 셜리를 흑인이 아니라 그저 한 개인으로, 그리고 친구로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자 상류층 백인 남성이 동성애자 하류층 흑인 여성의 삶을 얼마나 잘 이해할까? 아니 애초에 이해할 기회가 있긴 할까?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보다 기득권인’ 백인에게서 모욕을 당했을 때, 토니는 그런 멸시를 매일매일 받으며 살아온 셜리의 고통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린 북》에 담긴 이 주제가 옛날에 읽었던 정희진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에도 언급되었던 이야기라는 게 기억났다. 이해를 돕는 구절들을 조금씩 인용해본다.


“평소 나를 ‘열 받게’ 하는 비장애인 남성과의 대화에서 나는 ‘여성’이지만, 장애 남성과의 대화에서 나는 장애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성찰 없는 ‘보통 비장애인’이었다. 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고 대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강자의 과제’만은 아니다.” (27쪽)


나는 토니가 셜리를 받아들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셜리 또한 토니를 받아들이게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셜리는 교양 있고 박식하며 젠틀하기 때문에 토니의 세계를 잘 몰랐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손으로 집어먹는 것조차 질색하던 셜리다. 그는 생존 본능을 따라 모욕과 멸시를 견뎌내는 것을 내면화했지만 대신 따뜻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는 항상 외롭다(토니는 같이 뭉칠 수 있는 대가족이 있다). 셜리는 젠틀하지만 차갑다. 하지만 그의 차가움도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날에 토니의 가족과 함께 따뜻함으로 변화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린 북》은 셜리와 동행하며 감화된 토니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토니와 동행하며 감화된 셜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 《그린 북》은 차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 일단 《페미니즘의 도전》을 다시 한번 인용하면 이렇다.


“물론, 남성들도 같지 않다. 남성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29쪽)


“정체성의 정치가 문제적인 것은, 사회적 범주와 사회적 그룹들을 동질화, 자연화하여, 경계의 이동과 내부의 권력 차이와 이해 갈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31쪽)


이번에는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나오는 대사 중 일부이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로펌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앤드류가 도서관에서 자가 변호를 위해 관련 서적을 뒤적이고 있는데, 흑인 변호사 조가 다가와 앤드류가 내민 책의 구절을 읽는 장면이다.


“이것이 차별의 본질이다: 개인의 능력을 근거로 하지 않고 같은 특징을 가진 집단에 속했다는 것에 근거해 견해를 형성하는 것.”


《그린 북》에서 토니는 위와 같은 편견에 근거한 말을 쏟아낸다. 흑인인데 왜 흑인 가수 노래를 몰라? 흑인들은 다 치킨 좋아하지 않나? 이런 사고방식은 인종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인용한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라는 말이 아주 중요하다. 차별적 사고와 언어가 바로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의 성적 문란함은 ‘개인의 일탈’이지만, 성소수자의 성적 문란은 성소수자의 특성이다. 한국인의 범죄는 그 한 놈이 미친놈일 뿐이지만, 난민의 범죄는 난민이 다 그런 종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린 북》이 훌륭한 것은 이렇게 차별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여러 면면들을 다채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식하고 우악스러운 1차원적 차별 언행에서부터 더 교묘하고 위선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 그저 뭉뚱그려 치부할 수 없는 한 개인의 복잡한 정체성 등등. 때문에 비록 인종차별이 핵심 소재이기는 하나, 그 이상으로 《그린 북》은 차별 그 자체에 대한 영화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셜리와 토니의 격차는 엄청나게 크다. 셜리가 백인이었다면 토니는 셜리에게 그 어떤 언행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흑인 셜리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술집에서 시시덕거리는 평범한 백인들한테조차 얻어맞아야 하는 존재다. 로버트 케네디가 친구일 정도로 큰 사회적 성공을 거둔 돈 셜리조차 저런 취급을 받았다면 대다수의 흑인들은 얼마나 힘들었다는 것일까? 영화는 그 미묘한 긴장을 잠깐 보여준다. 엔진이 과열되어 잠시 도로에서 멈춰섰을 때, 셜리는 들판에서 일하는 흑인 노동자들을 보게 되고 흑인 노동자들 또한 셜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이 장면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캔디 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말 타고 들어오는 장고를 노려보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셜리가 당하는 이 아이러니한 사회적 취급은 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집안에서는 남성에게 종속되고, 심지어는 얻어맞는 일까지 벌어지는지, 그 능력 뛰어나고 돈 많고 조국에서 인기 많은 한국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도 서양에 나가면 모욕을 당하고 놀림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차별이나 혐오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과 직접 어울리면 해결될 수 있다.” 실제로 토니는 셜리와 ‘어울린’ 결과 변화되었다. 나아가서 나는 토니가 셜리의 또다른 정체성(스포일러라 안 밝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건 클럽에서 일했던 배경 덕이라고 생각한다. 클럽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분리’, ‘순결’, ‘고결함’ 따위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혐오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나는 예전부터 순결이니 순수함이니 따위를 외치다가 게토화되어 거룩한 꼴통들의 집단으로 전락해가는 학교를 이미 한 군데 알고 있다.


아무튼 《그린 북》은 차별이라는 주제를 깊고도 다양하게 묘사하면서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감화시키는 감동적인 영화다. 주제를 풀어나가는 연출과 각본도 훌륭한데 영화가 정말 재미있기까지 하니, 부족함이 없다. 연기상이든 각본상이든 뭐든 하나는 받을 만하다. 이 영화야말로 크리스마스에 보기 딱 좋은 영화이다. 비록 정식 개봉은 1월 10일이지만 CGV에서 사전 시사회를 많이 여는 모양이니 연말에 꼭 보시기를 강추한다.




*제목 ‘그린 북’은 흑백 분리가 있었을 시절에 흑인이 여행할 때 묵을 수 있는 숙소 등을 정리한 일종의 흑인 전용 가이드북의 이름이다. 존재 자체가 차별의 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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