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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성장이라는 이름의 영화

2020-03-27 00:57:45

 

Intro :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낯선세계로의 초대

아직은 고집도 세고 어리광도 심한 주인공 치히로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초등학생.

소녀라고 부르기엔 아직은 어린 10살배기 여자아이다.

(게다가 다른 디즈니의 주인공들처럼 별반 예쁘지조차 않다!)

어느 날 이사를 가는 도중 낯선 길로 접어들게 된 치히로네 가족.

낯선 길 끝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독특한 분위기를 띄고있는 한 입구.

분명히 거품경제의 잔재로 존재하는 퇴락한 유원지일 것이라는

거침없는(?) 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안쪽 세계로 향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마뜩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잔뜩 움츠러드는 치히로와는 달리

부모님은 주인도 없는 가게의 음식을 말릴사이도 없이 마구 먹어댄다.

그리고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한 다리 위에서 마주친게 된 건

이상한 복장을 하고있는 소년, 하쿠다.

화를내며 그녀를 되돌려보내려는 하쿠의 움직임과 함께 이세계의 날은 저물고,

그 이면에 숨겨져있던 떠들썩한 이 곳은, 알고보니 신들의 온천장이다.

 

 

Moto : 성장에 관한 잡설

나이가 들고 철이 들고, 서서히 어른이 되는 것에

까닭모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필자는 어느 날 거울 속의 낯선 나를 발견한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제까지고 내 곁엔 부모님이 있을거라는 절대적인 믿음.

가끔은 엉뚱해서 더 귀여웠던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동심.

무모했지만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이,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를 발견한 순간 산산히 부서졌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낯선 내 모습의 까닭은 바로 쉴새없이 성장해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이기심과 공존해 한층 고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한 내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곰곰히 돌이켜보게 됐다.

연약하고 받는 것에만 익숙하던 내가 나름대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제법 책임감있게 성장하기까지의 그 숫한 시도와 실패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순간, 그 시절이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는 거다.

불안하고 위태로워서 결국 더 아름다운 시절이었기때문에.

두렵고 신비한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

지금까지 세상과 맺어오던 관계는 저 너머로 사라져 간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철이 들어간다는 것.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애틋했던 성장의 순간을

문득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감동이 크다.

열살 때의 나는 어땠나.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헌데 그 웃음엔 가소로움도 있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충동적인 욕망도 섞여있다.

그런 일렁이는 감정을 화면으로 옮겨놓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제 몸하나 챙기는 것도 힘들어보이던 말괄량이 치히로가,

센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온천장에서 꿋꿋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자식을 키워낸듯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센은 이제 아무도 돌보지 않던 얼굴없는 요괴를 돌볼 줄도 알게되고,

하쿠를 살려내기 위해 다시 어딘지 모를 곳으로 발을 옮기는 결단력도 키워나간다.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강하게 만들어 가는 센의 모습은 눈부시다.

센에게 있어서 온천장에서의 일은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요,

정신적으로 한단계 성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쿠를 구하고 원래의 이름을 되찾아 온천장을 떠나가는 치히로는 더이상 어리지 않다.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온천장의 문을 나서는 것일까.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는 치히로의 작은 어깨가 야무져서,

그 뒷모습이 오래도록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메세지들을 찾는 즐거움이다.

초반부 아버지가 꺼내놓는 신용카드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

돈도 있겠다, 마음껏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음식을 끝도없이 먹어대는 식탐.

하쿠와 온천장에 찾아오는 더러운 강의 신으로 대변되는 환경의 중요성.

얼굴없는 요괴가 내미는 황금에 벌떼같이 달려든 사람들의 물욕.

그리고 개성없이 다 그저 그런 특색없는 하루를 보내는 역설적으로 소외된 군중들.

신들의 세계도 인간세계와 다를 것 없는 편견과 갈등의 연속이라는 점에서는

어쩔수없이 잔잔한 미소마저 짓게된다.

 

 

애니메이션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벅찬 감동을 전해준 이 작품.

늘 똑같은 주제와 정신세계가 담긴 지극히 미야자키 하야오다운 작품.

하지만,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런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라는 감탄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최초로 부딪힌 장벽을 깨고 나가는 치히로도 그녀안의 어떤 한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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