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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자아를 찾아가는 행복한 여정

2020-03-27 00:58: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를 접했을 때의 첫느낌은 마치 현대판 동화같은 환상적인 이야기정도로 밖에 생각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혼한된 듯한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스토리전개는 이 영화가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지, 어른들을 위한 영화인지 살짝 헷갈리게 합니다. 왠지 철없고 응석받이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신비에 세계에 들어서서 온갖 고생을 겪게 된다는 스토리는 분명 아이들에겐 쉽게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이며 어른들이 보기엔 왠지 좀 유치해보이는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재미를 위한 만화영화가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여러가지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임을 생각한다면 그냥 쉽게 흘려버릴 수 있는 영화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 극단의 동화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영화들인 것처럼 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또한 기발한 캐릭터들 및 환상적인 무대로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에게 항상 이야기되어 왔던 자연에 관한 깊은 관심 또한 영화속에 어김없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에서 보아왔던 일반적인 주제 이외에도 이 영화엔 한 소녀의 성장기가 때론 어둡고 무서우면서도, 때론 희망적이고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마치 사춘기 소녀가 그 나이대에 겪게되는 여러가지 불확실하면서도 막연하게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소녀의 성장기는 은유적으로 표현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과 잊고 있었던 순수했던 시대가 대비되면서 더욱 극명하게 표현됩니다.  

 

 

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분명 꽤나 복잡해보이는 스토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죠.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라면 한 소녀가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인물들이나 상징들은 이 소녀가 성장해가면서 겪어야할 모든 것들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잊고 지냈던 것들까지 말입니다. 잊고 살아온 것과 막연하게나마 새롭게 알아야 할 것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의 시대를 벗어나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세계를 접해야하는 한 소녀의 불안한 심리와 나름대로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독특한 캐릭터들과 환상적인 무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요. 처음 영화를 보지 않았을 때 저는 센과 치히로가 서로 다른 인물인데 그 두 사람이 마법의 세계에서 고생한다는 스토리쯤으로 예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센과 치히로는 같은 이름입니다. 아직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시기, 그러니까 비록 철없고 응석받이에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환경에 막 적응해야만 하는 시기의 이름이 바로 치히로입니다. 그런데 자의반 타의반 식으로 신비의 세계에 들어서서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야하는 시기의 이름이 센입니다. 유바바가 지배하는 그 세계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들 하는 것처럼 일을 해야하며 그 와중에 개인이라는 존재는 부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까지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남아있을 때의 이름이 치히로이며 "나"라는 존재가 상실되어가는 순간이 바로 센인 것입니다. 그리고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새롭게 적응해야할 무대는 그녀가 이전까지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막연한 그 무엇처럼 무척이나 생소하고 낯설은 환경으로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치히로가 "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치히로때의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모습이 그러한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덜그렁하니 새로운 환경에 놓여진 주인공의 주위에 여러가지 상징적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각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내포한 캐릭터들이 말이죠. 우선, 치히로의 부모님들을 살펴보면, 낯선 환경에 두렵기만 한 치히로와 달리 치히로의 부모님들은 비록 낯설긴 하지만 왠지 그러한 환경이 익숙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거쳐야할 관례를 무시하고 게걸스럽게 먹거리들을 먹어치웁니다. 쉽게 말하면, 치히로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지만 물질만능적인 현대사회속에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인간들을 묘사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치히로의 부모님들이 다른 동물도 아닌, 돼지로 변하는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또한 치히로가 센이라는 이름으로 일해야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도 무척이나 독특한데요. 우선, 그 세계를 지배하는 유바바라는 인물은 굳이 특정개인이 아닌, 물질적이고 황금만능주의적인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인물입니다. 무척이나 권위적이며 기회주의적이고 때로는 매정하기 이를데 없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죽어라 일만하지만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해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때론 노동력 착취로 부를 축척하고 살아가는 자본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녀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다른 생각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바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이름을 줄이는 것이라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뭐, 이리 복잡하고 길어. 그냥 센이라고 해."라고 이야기하는 유바바의 대사처럼 현대사회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는 그저 단순하게 거대사회의 일개 부속품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오직 일만 열심히 해야하며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암울한 현실. 그것은 바로 치히로가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현실의 모습이며 센이 되어 겪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유바바의 모습도 이중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녀의 쌍둥이 형제의 존재인데요. 지금은 비록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잔인한 모습이지만 예전에 그렇지 않았어, 하는 대사처럼 개인개인들을 지배하는 움직여가는 이 냉혹한 거대사회도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지금은 "개인"이라는 것이 부정되는 사회지만 과거엔 지금처럼 철저하게 "개인"을 말살했던 시대가 아니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유바바가 기르고 있는 "부"에 대한 생각인데요. 많은 분들이 이 "부"에 대한 의미를 과잉보호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과잉보호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잉보호 속에서 너무나도 연약하게 커가고 항상 외로움에 지쳐있는 아이들을 모습을 보여줍니다. 덩치는 산만한데 조그만 상처에도 울고불고 어쩔줄을 몰라하는 모습이라든가, 비록 풍요로운 환경속에서 부족함없는 생활을 하지만 항상 혼자서 생활해야만 하는 외로움, 친구를 그리워하는 모습들은 어쩌면 사회에 진출해서 비로소 단절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 사회가 개개인이 어렸을 적부터 단절이라는 것이 익숙하도록 훈련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또 다른 캐릭터는 영화초반부터 치히로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환심을 살려고 노력하는 가오나시라는 캐릭터입니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가오나시) 정체불명의 캐릭터. 이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제 생각에 낯선 환경에 접어들면서 겪게되는 치히로의 불안한 심리는 표현한 매개체가 아닌가 합니다.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는 불분명한 존재란 특별한 이유없이 막연하게 두렵기만 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치히로의 불안함을 표현합니다. 또한 단순히 그러한 표현 이외에도 낯선 환경과 타협할 수 있는 유혹적인 매개체로도 표현되는 것이 바로 이 가오나시입니다. 그가 물질적으로 치히로의 환심을 살려고 하는 모습은 마치 악마같은 모습으로 표현되며 치히로가 그것을 거절했을 때 뱃속에 가득 들어있는 온갖 것들을 토해내는 모습 또한 무조건적으로 타협하지 않으려는 치히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말이지 치히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그것은 치히로의 심리상태이기도 합니다. 불안하기만 치히로의 심리처럼 가오나시의 심리상태 또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계속 치히로만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 탐욕의 장소를 벗어나 치히로와 함께 유바바의 쌍둥이 형제를 찾아나서는 모습은 순수함과 편안함 그 자체입니다. 모처럼 안정감을 찾은 치히로처럼 말이죠.

 

 

또한 이 영화에는 단순히 현대사회에 적응해나가는 소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발전된 현대사회속에 묻혀버린 자연에 대한 그리움도 표현됩니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강의 신"과 "하쿠"라는 캐릭터입니다. 온갖 오물덩어리에 둘러싸여 그 정체조차 알 수 없었던 강의 신. 발전된 현대사회는 분명 눈이 부실만큼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파괴되고 오염되어 버린 자연의 아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치히로의 도움으로 드디어 본모습을 찾아서 행복해하는 강의 신.

 

"강의 신" 뿐만 아니라 "하쿠"라는 캐릭터 또한 발전된 현대문명속에 잊혀지고 지워진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 또한 어느새부터인가 치히로처럼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유바바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 "하쿠"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캐틱터들과는 약간 성격이 틀립니다. 단순히 강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치히로의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치히로 본인은 몰랐지만, 그저 아무생각없이 순수하고 행복에 겨웠던 그 시절, 그녀와 항상 함께 해왔던 소중한 추억. 그것이 바로 "하쿠"라는 캐릭터입니다. 또한 이 "하쿠"라는 캐릭터는 지금은 자신의 정체성 조차 불분명해진 상태이며 존재조차 없어진, 어찌보면 의미자체를 상실한 존재지만 아직까지 치히로의 가슴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소중한 기억으로서 낯선 환경에 힘들게 적응해야만 하는 치히로를 지탱해주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할, 언젠가는 맞닥트려야할 환경이라면 울고 있지만 말고 당당히 맞서라며 치히로를 격려하고 채찍질합니다. 다만, 절대로 자신의 이름은 잊어버리지 말라는 충고처럼,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모든 것이 바뀌어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순수함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치히로가 유바바의 목욕탕에서 점점 적응해나가면서도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소중한 그 무엇, 그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하쿠"라는 캐릭터이며, 그러한 "하쿠"의 노력 덕에 치히로는 자칫 잊을 뻔 했던 소중한 기억을 다시금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애니메이션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치 동양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마법의 세계에 들어선 한 소녀가 여러가지 환상적인 사건을 겪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속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사건 및 캐릭터들의 숨겨진 다양한 의미들을 곰곰히 생각하며 본다면, 작게는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넓게 생각한다면 단순한 성장이야기가 아닌, 잃어버린 순수한 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냉정하고 딱딱하며, 지극히 물질만능적으로 발전된 현대사회의 냉혹함 속에 묻여져버리고 파괴되어버린 자연에 대한 그리움 등을 종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어두운 면만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치히로가 모두에게 인정받은 과정을 통해서 나름대로 희망의 메세지 또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곳으로 진출하기 이전, 사회라는 곳에 대한 많은 꿈을 꾸게 됩니다. 하지만 그 꿈이라는 것이 마냥 달콤한 꿈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막연한 불안함에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사회에 진출을 해서 적응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마치 톱니바퀴 굴러가듯이 엄격하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선시하는 이 사회는 분명 감당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인간의 냄새를 없애고 남들과 똑같이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은 마치 개개인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고 거대사회의 조그마한 부속품처럼 살아가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자 의무처럼 다가옵니다.

 

 당연히 그러한 현실에 놓여진 치히로로서는 그저 모든 것이 불안하고 무섭기만 합니다. 무엇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그저 명령에 따라서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쿠의 이야기처럼 단순히 수동적으로 적응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치히로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모습 등을 통해서 치히로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게 되며 진정으로 한단계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먹고 살기 바쁜 시기가 되면 과거 소중했던 기억들을 자신도 모르게 잊고 살아가게 됩니다. 왜 내가 이러고 살아야하나 하고 자신을 책망하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나 하고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정말이지 암울함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암울함 속에서도 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잊지 않고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과 그 추억들을 통한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비록 현실은 한치의 오차없이 모든 걸 잊고 적응하라 하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적응이 아니라 복종일 것입니다. 자아를 상실한 개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진 사회라는 거대한 무생명체. 정말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치히로의 모험을 통해서 잊혀진 자아와 소중한 기억들을 찾아 나서는, 비록 어둡고, 암울하지만 긍정과 희망이라는 종착지를 향해서 떠나는 유쾌하면서도 행복한 여정. 그리고 진정한 성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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