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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 3>토이스토리3는 아동용을 가장한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2020-03-27 00:55:53

개인적으로 '내용이 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비해 어렵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아동들이 보는 것이니만큼 잔재미에 치중하고, 강제적인 해피엔딩이 필요하기도 하며,

이런 구조를 관통하여, 시사성이 있는 내용과 함께 대상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곧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하는것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어렵고, 그만큼 만족시키는 작품도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에, 동심자극적인 창작물 혹은 고전 동화의 리메이크인 것에서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역시나,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이 사실인 듯 하다. 적어도 토이스토리3은 그렇다. 이 작품은, 작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돌아올 수 없는 먼 미래로 떠나 버린 앤디와, 그러한 앤디에게서 버려짐을 느끼는 낡은 장난감들 사이의 애정과 의리라는 식상한 소재와, 해피엔딩이라는 전형적 틀에서 다루면서도 곁가지를 통하여 시사적인 내용까지 제공해 주고 있는 쉽게 보기 어려운 웰메이드 작품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간만에 '물건'이 출현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 작품의 시작은 절망적이다. 주인공 장난감들의 주인인 앤디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더 이상 장난감들과 놀아 주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장난감들은 이런 앤디를 떠나 새로운 자신들의 낙원을 찾으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앤디의 집을 떠나, Sunnyside라는 이름의 한 보육원에 도착하고, 랏쏘라는 이름의 딸기향이 나는 곰인형의 환대를 받으며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맛본다. 놀아줄 아이들은 많고, 게다가 주 5일제 근무라서, 2일은 장난감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는 최고최적의 환경인 곳이다.

 

앤디의 장난감들은 Sunnyside에서 보육되는 영아기 아이들이 지내는 방에 배속받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장난감들을 갖고 노는 방식은 지극히도 파괴적이라서 이들은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버즈는 랏쏘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찾아가지만, 랏쏘는 오히려 버즈를 잡아 포맷시켜 자신들의 충직한 개로 만든 후, 버즈를 이용하여 장난감들을 탄압한다. 그리고 말한다. "Sunnyside는 평등한 곳이다. 너희들이 많은 시간 노력을 한다면, 좋은 곳에서 안락한 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라고. 결국, 버즈를 제외한 앤디의 장난감들에게 허락된 장소는, Sunnyside의 Shady Place인 것이다.

 

어라, 그런데 이 구절,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구절이다. 책이나 애니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역사에서 말이다. 토이스토리3에서 초기 Sunnyside가 보이는 세계는 분명 만인이 평등한 사회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Sunnyside의 안락함을 즐기고 있는 것은 랏쏘와 그 추종세력들 뿐이다. 어디에서 많이 보지 않았나? 그렇다. Sunnyside가 대표하고 있는 세력은 소련인 것이 분명하다. 랏쏘는 '곰'이다. 그리고 소련을 상징하는 동물 또한 '곰'이었다. 그리고 랏쏘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망치처럼 생겼다. 이 또한 공산주의 국가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를 닮아있다. 게다가, 랏쏘와 그 추종자들의 안락한 생활과 달리 Sunnyside를 이루는 많은 장난감들은 '개만도 못한'생활환경에서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소련의 지도세력과 인민의 생활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최초로 랏쏘를 비판하는 내부세력인 켄은 느끼한 외모와 '평등한 후기 Sunnyside'의 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옐친을 닮았고, 랏쏘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우는 아이 인형은 대머리라는 점과 실질적으로 랏쏘를 밀어낸다는 점에서 고르바초프를 닮아있다.

 

 

하지만 Sunnyside를 통해서 토이스토리3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구세계 역사에 대한 반복으로 독재의 위험성을 관객에게 일깨워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Sunnyside의 생활은 자본주의 사회와도 밀접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일하는 것과 직접적인 행복은 크게 연관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피토하면서 일한 결과물은 어딘가에 존재할 사회 상층부의 부를 축적시키는 데 대부분이 사용되며,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지도층은 그 결과물을 '기꺼이' 사회구성원들과 '나눈다'. 물론, 그 나눔에 있어서 대부분의 부가 상층부에게 축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Sunnyside의 구성원들은 일주일에 5일간, 아이들과 놀아주며 이틀간의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일반화되어있는 주5일 근무체계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5일간 '아이들(자본)'에게 시달리고, '랏쏘와 패거리(지도층)'에게 억압당한 후 겨우 이틀이라는 시간만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인들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은, 랏쏘의 대사에서도 읽을 수 있다. 탈출하려는 앤디의 장난감들에게 랏쏘는 "Sunnyside는 평등한 곳이다. 너희들도 열심히 일하면 우리처럼 안락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라고.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회의 평등'과 직접적으로 결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균등한 기회를 얻고, 노력에 따라 합리적인 결과물을 통해 계층이동과 자아실현 및 일명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배운다'. 정작 그것이 맞는가 안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거의 주입식 교육에 가깝게 반복적이고 구속적으로 이러한 '기회의 평등'에 중독되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내일의 행복'이라는 그 가련할만치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에 대해 신경쓰고 자신을 아낄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토이스토리3가 단순히 아동용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토이스토리3는 아동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한 편, 그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에게 이런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는 행복하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너무나도 탁월하다. 소련을 비꼬아 역사적 학습효과를 제공한 후, 완벽한 '승리한'체제라 믿고 있던 자본주의마저 통렬히 '씹어' 버리는 연출이 말이다.

 

Sunnyside의 왕초, 랏쏘와 그 졸개들의 행복을 위해서 앤디의 장난감들이 희생되는 장면은

신규 진입 세력이 기존 맹주들을 지탱해 주는 현 자본주의 체제와 너무나 닮아있다고 생각된다.

 

곁들여서, 마지막으로 섬뜩한 두 가지, 하나는 랏쏘의 추종세력들이 즐기는 놀이가 인간들의 '도박'이라는 것이며, 두번째는 랏쏘에게 귀순(?)한 버즈가 관리자의 직위를 맡아 그들의 세계에 너무나 충실하게 편입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아무리 순수한 리얼리스트라 하더라도 한 번 변질된다면 권력의 개가 되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조차 잊기 마련이라는 것을 토이스토리3는 영웅 버즈의 일시적인 몰락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보여준다. 이는 마치, 정작 자기 스스로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진 자들에게 그 힘을 '하사받은' '완장 낀 바보'들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들의 반동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주인공 '우디'이다.

 

우디는 Sunnyside에서 자신들의 친구를 데리고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랏쏘와 정면대결을 하게 되고, 랏쏘의 일당이었던 '켄'의 연설, 그리고 '우는 아기 인형'의 반란에서 일차적으로 이기게 된다. 여기에서 토이스토리3는. 아무리 강력하게 옭죄고 억압한다 하더라도, 흔히 쓰이는 '절대정신'의 각성을 통해, 한 사회의 지배층의 일원에 있었다 하더라도 만인의 평화를 위한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억압적 사회를 붕괴시킴으로써 억압적 사회에서의 인간이 가진 힘을 긍정하고 있다. 한없이 암울하기만 했던 Sunnyside의 전반기를 일거에 뒤집는 아주 좋은 반전이다. 그리고 그 이후, 랏쏘는 한없이 망가진다. 앤디의 장난감(민중)이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랏쏘는 다시 한 번 앤디의 장난감들을 골탕먹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잘못된 지배층의 표본이 나온다. 자신이 잘못했고, 징벌받은 데 이어, 구원까지 받았음에도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 없는 지배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Sunnyside문제를 해결한 후, 이야기는 다시 앤디와 장난감들의 교감으로 돌아온다. 앤디는 어느새 자신들에게 돌아온 장난감을 착한 아이 '보니'에게 맡긴다. 그리고 보니에게 맡기기 전, 어쩌면 자신들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장난감들과의 놀이를 신나게 즐긴다. 그리고 말한다. '우디는 친구를 영원히 배신하지 않아.'라고. 여기에서 앤디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유년기에서 성인기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유년기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아픈 치부를 건드린다. 어느덧, 세상에 익숙해졌다는 미명 하에 순수함을 잃어가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그들의, 잊고 산 순수함에 대한 미안함을, 과거의 향수라는 소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많은 어른들은 토이스토리3를 본 이후 씁쓸할 것이다. 우리들은 분명 순수하고 행복했건만, 어느새 Sunnyside에 종속되어 살아온 것이 아니냐라면서 말이다.

 

 

덧붙이기

 

  오랜만에 제가 쓴 글이 생각나서 들어와봤습니다. 사실 마음에 들게 써 진 만큼 부끄럽게 생각하는 글이기 때문인데요, 어떤 분께서 제게 불만이 아주 많으신 것 같네요. 뭐 악플도 관심이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유감스럽지만 님이 생각하는 그런 '상패'는 아닙니다. 개인의 '정치적 생각'과는 별 상관 없는 한 일에 대해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취업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슬슬 생각해 볼 나이는 되어가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전 그래도 당신보다는 잘 살아갈 자신은 있네요. 적어도 전 맘에 안 드는 글 털려고 남의 사적인 공간까지 털어가며 까려고 작정할 만큼 편집증적이지 못합니다. 자기 먼저 걱정하고 남 걱정하세요. 이 글을 그분께서 보시면 좋겠네요. 세상이 무섭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 글 좀 까보겠다고 블로그까지 뒤지는 님같은 사람이 더 무서워요 ^^;; 어휴~

 

  마지막으로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무게잡고 '니들은 이런생각 못하지?'라는 마인드로 쓴 글이 아닙니다. 저도 이 영화 보면서 울고 웃고 재미있게 시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런 관점은 어떨까? 재밌겠다!' 싶어서 쓰게 된 글이고, 그 글이 나름대로 마음에 들게 나와서 한 번 바깥으로 내보내 본 글에 불과합니다. 이 글은 단순한 감상문이고, 이런 관점도 있구나. 정도로 넘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란의 원인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 제가 좀 어리거든요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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