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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어른스러워진다는 건 평범해지는 것

2020-03-31 04:56:38

어른스러워진다는 건 평범해지는 것

‘바람(WISH)’

 

감독: 이성한

출연: 정우, 황정음, 양기원, 손호준

개봉일: 2009년 11월

 


 영화 ‘바람’을 극장에서 혼자 봤습니다.

할인 혜택 없이 8천원을 몽땅 주고 들어간 극장 안은 썰렁했어요.

극장 의자 뒤로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요.

그러나 곧 이어 혼자라는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추억 속의 학생들이 저를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였으니까요. 그럴 만큼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영화 내용은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제목인 바람을 휭휭 부는 바람(WIND)이라고만 생각하였지요.

하지만 그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바람(WISH: 희망하다, 바라다)을   뜻했습니다.

2010년을 시작하는 우리들의 바람을 생각하며 그들의 바람은 어떤 것인지, 

함께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줄거리>

 주인공 짱구는 형이나 누나와는 달리 명문고에 진학 못 한 엄한 집안의 막내둥이입니다.

실력이 모자랐던 그는 불법 서클이 많고 교사 폭력이 심하다는 광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지요.

“만화책에 나온 학교”(학원물에 나오는 폭력 학교) 같은  그곳은 그야말로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17세부터 19세 무렵의 고딩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센 놈만 살아남는 동물적인 공간이며 동물의 왕국”인 학교에는 2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몬스터라는 불법서클이 있었지요.

몬스터 선배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짱구는 망설이다가 그 서클에 들어갑니다.

 

 

 

 


# 추억 속에 남아있는 기쁜 우리 젊은 날    

 청소년기를 지나 지금 어른인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공부는 되지 않는데 대학은 가야겠고, 인생에 대한 답이 없어서 안개 속처럼 모호했던 학창 시절을요.

영화 속에는 70년대 교복인 파란색 윗도리와 회색 바지를 입은 고교생들이 등장합니다.

그 시절엔 평민 학생들과 불법 애들(?)이 공존했습니다.

당시 불법 애들은 교복을 착 달라붙게 줄여 입었고 교모를 삐딱하게 썼으며 길에다 침을 뱉고 다녔습니다.

평민 학생들이 볼 때 그들은 무섭기만 했지요. 마주치기만 해도 잘 못 될 것 같아 눈을 내리깔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삐딱했던 그네들이 공부 말고 뭘 하고 다니는 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학생이나 불법 학생이나 답답한 가슴을 부여안고 살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짱구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허둥대던 그 시절,

서클 선배들의 말투를 흉내 내던 어설픈 몸짓하며, 유치장에 들어가서 겨우 하는 말이란 게 사식을 넣어달라고 했던.

짱구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아직은 덜 큰, 한참은 커야 하는 작은 어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랬지요? 얼른 커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멋지게 독립하는 걸 꿈꾸지 않았나요.

하지만 어른스러워지는 건 평범해지는 것일 뿐 짱구와 우리들이 생각했던 유토피아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저 기쁜 우리 젊은 날만이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 우리 모두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영화 후반부는 약간 다른 길로 빠집니다.

불법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갑자기 짱구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끝이 나요.

그러나 결국 짱구의 성장기를 대변하려면 마무리는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긍정합니다.

짱구나 그의 형이나 아버지나 하나의 핏줄이면서 같은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니까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모범적으로 살던 짱구 아버지가 간경화에 걸립니다. 목욕탕에 갔던 짱구는 복수가 찬 아버지의 배를 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임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짱구는 정작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던 “괜찮은 어른이 되겠다, 걱정 마시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맙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왜 있는 지 아시지요?

이 말에는 부모님 떠나고 대성통곡 해봐야 소용없단 소리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무지한 인간은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뒤늦게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겁니다.

이것이 인생일까요?

이런 일들은 모두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움도 한 때, 괴로움도 한 때라고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모든 것이 한 때인 것, 그것이 바로 무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학창 시절 이야기엔 웃고, 아버지 이야기엔 눈물지었습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면 실감나지 않았던 사실감까지 팍팍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말죽거리 잔혹사’ 처럼 폼만 잡은 학원물이 아니라 리얼한 성장영화라고 말하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들의 주인공은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묻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네들이 바랐던 희망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색하고 모자라게 살아왔던 인생을 다시 한 번 폼나게 살아보고 싶었던 그 때로  돌아가기,

앞으로의 인생 또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

바로 그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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